[인터뷰] ‘냉매 없이도 시원하게’ 삼성전자 개발자들이 말하는 차세대 펠티어 냉각 기술 도전기

삼성전자는 지난 6월 28일, 존스홉킨스대학교(Johns Hopkins University) 응용물리학연구소와 공동 연구한 ‘차세대 펠티어(Peltier) 냉각 기술’ 논문을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했다.

세계 최초로 나노 공학 기술을 활용해 ‘고효율 박막 펠티어 반도체 소자’를 개발하고 이를 활용한 무냉매 냉각 실증에 성공한 것. 이로써 냉매 없이도 뛰어난 냉각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이미 2024년부터 펠티어 소자와 고효율 컴프레서를 조합한 ‘비스포크 AI 하이브리드 냉장고’를 출시하며 친환경 냉각 기술을 실생활에 적용해오고 있다. 마치 하이브리드 자동차처럼 두 가지 냉각 기술을 상황에 따라 최적 운용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공개된 ‘차세대 펠티어 기술’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가전제품에 적용되고, 어떻게 냉각 기술의 미래를 바꿔나갈까? 이 기술을 연구한 삼성전자 삼성리서치 정성진 프로, 이를 차세대 냉장고에 적용시킬 DA사업부 정하진 프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반도체 소자로 정밀하게 온도 제어가 가능하다고? 펠티어 냉각 기술의 원리


기존 냉장고는 증기 압축 방식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기체 상태의 냉매를 압축해 액체로 만들고, 이를 다시 증발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주변의 열을 흡수하고 방출해 내부 온도를 낮추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일반적인 냉각 기술로 널리 사용되어 왔으나, 냉매 사용에서 오는 환경 부담과 소비 전력 저감에 한계가 있어 친환경 냉각 제품 개발에 어려움이 있다. 또한 부피가 큰 컴프레서와 복잡한 기계 부품들은 냉장고 디자인에 제약을 준다.

반면 펠티어 냉각 기술은 접근법이 다르다. 펠티어 냉각은 전기를 이용해 열을 이동시키는 반도체 기반 기술로, 펠티어 반도체 소자의 양 끝에 전류를 흐르게 하면 한쪽 면에서는 열이 흡수되고 반대쪽 면에서는 방출되는 ‘펠티어 효과’가 나타난다.

이 원리를 이용해 열을 흡수해 온도가 내려가는 면을 냉장고 내부에, 흡수한 열을 방출하는 면을 냉장고 외부에 배치하면 내부 온도를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전기만으로도 열 흐름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냉매를 매개로 한 기계적 방식보다 구조 역시 단순해지기 때문에 디자인 유연성도 높아진다.


펠티어 기술 고도화, 글로벌 협업으로 넓힌 가능성


2023년 초, 삼성전자는 펠티어 냉각 기술의 상용화와 성능 향상을 목표로 DA사업부, 삼성리서치, 생산기술연구소 등 관련 조직 간 협업을 본격화했다. DA사업부는 펠티어 기술을 기반으로 제품 개발에 주력해 2024년 초 ‘비스포크 AI 하이브리드’ 냉장고를 출시했다. 삼성리서치와 생산기술연구소는 출력과 내구성을 개선한 고성능 펠티어 소자 개발에 집중하며 기술 고도화를 이끌었다.

같은 시기, 삼성리서치는 보다 근본적인 기술 혁신을 위해 글로벌 협력에도 나섰다. 2023년 말 부터 미국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연구소와 협업을 시작해 2024년 4월부터 약 8개월 간 본격적인 공동 연구에 돌입한 것.

이번 공동 연구의 핵심은 존스홉킨스대가 보유한 나노 박막 펠티어 소자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 mW(밀리와트)급 펠티어 소자의 출력을 수십 W(와트)급으로 끌어올려 실제 가전에 탑재 가능한 ‘고효율 박막 펠티어’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삼성전자는 특히 시스템 설계와 패키징 기술에서 강점을 발휘했다. 펠티어 냉각의 특성상 소자의 양면에서 흡열과 발열이 동시에 발생하기 때문에 두 면 간의 온도차를 최소화하지 않으면 성능이 급격하게 저하된다. 기존 펠티어 소자와 구조가 다른 나노 박막 펠티어 소자를 냉장고에 그대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열 이동에 방해가 되는 접촉 열 저항이 커지거나 성능이 불안정해지는 문제가 생겼다. 때문에 펠티어 소자의 각 면의 효율적인 열 이동이 가능한 패키징 기술은 고효율 펠티어 냉각 시스템 구현을 위한 핵심 요소 기술 중 하나였다.


정성진 프로는 “시뮬레이션과 반복 테스트를 통해 문제 원인을 도출했고 효율적인 열 이동이 가능하도록 신규 TIM(열 계면 소재, Thermal Interface Material) 및 조립 방법 등을 설계하여 새로운 패키징 방식을 본 연구에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신규 개발된 차세대 박막 펠티어 소자는 기존 소자에 비해 약 75% 향상된 냉각 효율을 자랑한다. 펠티어 소자의 각 면에 열 손실을 최소화해, 차세대 박막 펠티어 소자를 활용한 고효율 냉각 제품 개발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기술을 일상으로, 펠티어 냉각의 실현


삼성리서치가 존스홉킨스대와의 협업으로 차세대 펠티어 냉각 기술을 개발했다면 이제는 펠티어 기술을 제품으로 구현하고 있는 DA 사업부의 차례다.


앞서 언급했듯, 삼성전자는 2024년 컴프레서와 펠티어 소자를 적용한 ‘하이브리드’ 방식 냉장고를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 컴프레서를 소형화하고 펠티어 소자를 함께 탑재해, 사용 조건에 따라 두 냉각 방식을 유기적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비스포크 AI 하이브리드는 평상시 단순 입/출고 조건에서는 컴프레서가, 식료품을 대량 입고하거나 뜨거운 음식을 넣는 등 고부하 조건에서는 펠티어 소자가 함께 작동해 냉각 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높인다. 또한 냉각기 안에 쌓인 성에를 녹일 때에도 펠티어가 냉각을 유지함으로써 내부 온도 상승을 최소화하는 장점도 있다.


이처럼 두 냉각원이 동시에 동작하는 구간에서 최적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는 레이아웃 설계가 관건이었다. 정하진 프로는 “기존 컴프레서가 하단 후면에 있어, 펠티어를 발열 간섭이 없는 상단에 위치하도록 내부 구조를 새롭게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한국 기준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 기준 대비 최대 30%까지 소비전력을 절감했고[1], 내부 온도 유지 성능 역시 큰 폭으로 향상됐다.

DA사업부가 그리는 하이브리드 냉장고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 미국, 유럽 등 일부 지역에만 출시되어 있지만, 인도 등 고온 다습한 열대지역에서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목표로 삼성리서치와 함께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개발한 차세대 펠티어 냉각 기술까지 적용되면 냉각 성능과 에너지 효율은 한층 더 강화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DA사업부 정하진 프로는 “기존 하이브리드 냉장고에 이번 차세대 펠티어 냉각 기술을 탑재하게 된다면, 보다 정밀한 온도유지와 개선된 소비전력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완전한 무냉매 냉장고를 향한 도전


펠티어 냉각 기술은 더 나은 지구를 위한 기술이기도 하다. 냉장고에 주로 쓰이는 냉매는 누출 시 오존층 파괴나 지구 온난화를 유발할 수 있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사용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이러한 상황에서 냉매 없이도 냉각과 정밀한 온도 제어가 가능한 펠티어 기술은 친환경성과 에너지 효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해법으로 주목 받는다.

삼성전자는 현재 하이브리드 구조를 넘어 펠티어 냉각 기술만으로 작동하는 완전 무냉매 냉장고를 구현하는 것을 중장기 목표로 삼고 있다.

정성진 프로는 “완전한 무냉매 냉장고를 실현하기까지는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AI, 반도체 공정, 3D 프린팅 등 차세대 기술을 융합해 펠티어 반도체 소재의 초격차 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정하진 프로는 “제품화 관점에서 필요한 기술 요소들을 삼성리서치와 함께 적극적으로 검토하며, 상용화 시점을 최대한 앞당기기 위해 긴밀히 협력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가전의 혁신을 넘어 냉각 기술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차세대 펠티어 냉각 기술이 그려갈 냉각의 미래와 새로운 냉장고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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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예원 기자 다른기사보기